논 단

박인우 교수

전) 고려대학교 교수학습개발원 부원장
현) 고려대학교 교수/대학원 주임교수

“백년지계, 이제 20년!”

‘Brain Korea’(BK)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학원 교육에서 지원 규모와 지속 기간 면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업이다. 1999년에 ‘BK21 사업’으로 시작하여 7년씩 2단계에 걸쳐 추진되었고, 2013년부터는 ‘BK21 플러스 사업’으로 명칭과 세부내용이 다소 변경되었지만, ‘대학원 교육 및 연구역량 향상’이라는 목적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교육분야에서 정부 정책이나 사업은 대개 정부 예·결산 회기에 따라 실시되는 연차평가, 그리고 정권 교체 등으로 인해 5년 이내에서 1회성으로 이루어진다. 내년이면 20년이 되는 이 사업은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장수하고 있는 셈이다.

백년지계 막여수인(百年之計 莫如樹人). 곡식은 매년 거둘 수 있고, 과실나무도 10년이면 대개 결실을 얻는다. 곡식은 한 해, 나무는 10년 계획으로 가장 좋은 것이라고 했다. 이에 비해 100년이 걸릴 일을 계획한다면, 사람을 기르는 것만한 것이 없다. 인재양성이 그만큼 중요함을 시사하는 한편으로 교육은 100년은 아니더라도 빠른 변화에 익숙한 지식정보화 시대에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BK21 플러스 사업을 통해 개선하고자 하는 대학원 교육만 하더라도 계획에서 의도한 인재가 양성되었는지를 확인하는데는 석사의 경우 아무리 줄여도 3년, 박사는 4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고등교육법은 석사과정을 2년, 박사과정을 3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새로 계획한 교육과정을 이수하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 졸업한 학생이 현장에서 습득한 연구역량을 발휘하여 의미있는 실적을 보이려면 다시 1년을 더 필요로 한다. 사실, 1년 실적으로 대학원 교육의 효과를 얼마나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중견연구자로 구분하는 기준인 5년을 고려한다면 박사과정의 경우 최소 8년으로 늘어난다. 7년인 사업기간 내에는 그 효과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에도 사업 추진 주체가 단기간에 그 효과를 확인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고등교육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예산을 배정한 만큼 교육부도 국회, 언론 등 여러 기관으로부터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지, 투입한 예산만큼 의도한 효과를 얻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 특히 매년 사업 예산을 최종 승인하는 국회는 이러한 결정에 앞서 사업 효과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게 된다. 또한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연구재단도 대학이 계획한 대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지를 관리할 책임이 있다. 결국, 연차평가나 단계평가는 받아들여야만 현실이 된다.

BK21 플러스 사업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사업비 수혜자를 대상으로 한 평가로 확인된다. 그동안 이 사업에서 실시된 다양한 평가는 사업비를 수혜받은 대학원의 교수, 학생,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이 평가에서 핵심은 사업기간 중에 보여준 참여학생과 교수의 교육과 연구활동, 그리고 연구실적이다. 수치로 표현되는 연구활동과 연구실적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과거와는 달리 연구역량 향상을 위한 교과목 개설, 특별 프로그램 제공, 타 기관 연수 등과 같은 교육 활동을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참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평가로 사업 효과를 확인하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게다가 사업 중에 참여학생의 활동과 실적을, 그것도 단기간을 대상으로 하는 평가는 양적인 실적에 치중하도록 하는 약점이 있다. 백년지계라는 교육을 고려한다면 치명적이다.

대학교육에 몸 담은 20년을 되돌아보면 그동안 많은 학생들이 거쳐갔다. 학생은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남아 있는 이는 교육체제와 교수들이며, 이들이 우수한 연구역량을 갖추도록 하는데 있어서 핵심이다. 교육체제는 학생이 입학하여 졸업할 때까지 경험하는 교육활동의 총체이다. 교과목으로 구성된 교과과정과 졸업요건으로 명시된 비교과과정, 그리고 부가적으로 제공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이 교육체제가 무엇보다도 연구역량을 육성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교육체제를 구축하고, 그 속에서 교육하는 이가 교수들이다. 우수한 교육체제를 갖추는 것과 이를 실행하는 것은 전적으로 교수의 역량에 달려있는 것이다.

‘BK 사업’은 대학원생의 교육 및 연구 활동을 중점적으로 지원해왔으며,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왔다. 이에 비해 교육체제, 특히 교수에 대한 지원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가장학금처럼 참여 대학원생에게 장학금과 활동비로 직접 제공되었으며, 프로그램 구축과 교수의 교육 및 연구역량 향상을 위해 예산을 배정하는 것이 장려되지는 않았다. 우수한 연구인력을 육성하는 교육체제에서 교수가 차지하는 역할을 고려할 때, 적어도 ‘교수에게 이로운게 별로 없는 사업’이라는 얘기는 듣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교수의 연구를 지원하지는 않더라도, 교육과 연구역량을 향상하기 위한 활동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20여년 가까이 정부 지원을 받는 학생을 바라보기만 했던 교수들이 이제는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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